2008/12/08 22:29

기도하기에 근심은 접어야 하는거죠.

“예수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름을 받았으면, 분명히 우리도 예수님과 사도들처럼 능력 있는 일을 할 수 있을텐데 왜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너희와 나, 너희와 그 시대의 사도들과의 차이가 무엇인지 너는 알고 있느냐?”

“글쎄요. 의지 할 곳이 하나님 밖에 없었을까요? 기도하는 양의 차이였을까요?”

“그런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란다. 그렇게 간절한 차이도 아니고, 심각한 양의 차이도 아니란다. 항상 답은 가까운 곳에 있고, 항상 답은 성경 속에 있단다.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작은 차이가 있다는 말씀이 이해는 가는데, 정말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요.”

“사랑하는 아이야. 잘 들으렴. 너희가 생각하는 나와 사도들은 너희처럼 근심하지 않았었단다.”

“근심하지 않았다구요?”

“그게 아니라, 너희처럼 근심하지 않았단다.”

“저희의 근심이 어떤 것이길래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 능력이 이루어지지 않기까지 할까요?”

“사랑하는 아이야. 잘 들으렴. 이것은 기도를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된단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에 반드시 기도는 해야하나, 응답이 없는 기도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지. 사람들이 대게 그렇단다. 어떤 복잡한 일이 생기면 걱정하고, 근심에 빠지않니?
 일반 사람들은 술에 빠지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들에게 상담을 받기도 하지. 중요한 것은 기도를 하는 크리스천들이 문제란다. 그들이 정말 내게 기도하는 것이냐, 기도의 흉내만 내는 것이냐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란다.”

“기도의 흉내라니요?”

“기도는 응답되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란다. 기도라는 것은 너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 기도란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네가 바뀌어져가는 지혜를 얻는 것이 기도의 응답이란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고 큰 착각에 빠져있기 때문에, 기도 할 수 있는 크리스천이면서도 근심에 빠져서 살아가는 이유란다. 그리고 그 근심이 바로 능력을 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야.”

“그렇다면, 근심스러운 일이 싫어서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좋은 일일까요?”

“사랑하는 아이야. 왜 포기하려고 하니? 네가 목자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에 도전을 받아 근심에 빠졌다고 생각해보자. 그 근심에 대하여 기도하면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변화시키는 것이 싫어서 혹은 네가 변화 되어야 하는 것이 무서워서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 남은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일이란다.
또 그런 문제가 아니라, 너를 괴롭게하는 이 땅의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네가 포기하는 것도 옳은게 아니란다. 그런일에 네가 포기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그것들이 그만큼 악하고 독한 문제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 그러나, 사랑하는 아이야. 네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네가 성도라면.. 능히 이 땅의 문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와 희생이 있어야 한단다.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포기하려한다는 것은 내가 맡긴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는 것과 같은 것이지.”

“아니, 예수님. 그게 어떻게 말이 되나요? 포기해버리고 관심을 두지 않고 내가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않아 내가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왜 잘못된 일입니까?”

“첫 번째 이유는 네가 나의 아들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너의 아버지 하나님이나 내가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세 번째 이유는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사실,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다 행해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완전하게 행하지 못하는 것이 또 현실이잖아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말씀은 많이 힘든 것 같아요.”

“그래. 사랑하는 아이야. 분명히 힘들 것이야. 바로 그것이 너희가 하는 근심이기 때문이지. 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근심은 어떻게 해야 이 일을 잘 해결할까 하는 것이지만, 너희의 근심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내가 행동하면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란다.”

“방금 말씀하신 그 근심이 예수님께서 처음 말씀 하신 그 근심과 분명히 같은 것인가요?”

“그렇단다.”

“그것이 왜 잘못인가요? 주님의 말씀에 더 순종하기 위해서 고민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었나요?”

“너희의 입으로는 더 잘하기 위해서 근심한다고 하지만, 그 말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알고, 너희도 알고, 너희를 속이기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는 사탄도 알고 있단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아야 한단다. 너희의 그 근심이 내가 선물을 준 것을 오히려 방해한다는 것과 믿음이 오히려 무뎌지도록 만든다는 것을 말이야.
사랑하는 아이야. 나는 그런 ‘어린 아이’를 사랑한단다. 내게 모든 책임을 돌리려고 계산하고 행동하려는 머리가 굵은 어른들이 아니라, 어린 아이가 아니라 하라는 그대로.. 내가 주는 말에 대하여 그대로 행동하는 아이처럼 너희가 살기를 원한단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Comment 0